한 사람이 중요함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님의 일상(日常)을 묵상하던 중에, 평소에 의미를 두고 생각지 않았던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의 하루 일과는 상상할 수 없이 바쁘셨고 짬이 없는 시간을 보내셨다는 점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하나님 아버지와 기도의 교제를 가지는 것을 시작으로, 동고동락하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풀어 주셨으며, 이곳저곳을 이동해 가는 곳에서 천국 복음과 윤리적인 교훈을 강론하셨습니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병자들이 몰려왔을 때, 아무도 마다하지 않고 고쳐 주셨으며, 때로는 귀신들린 자나 정신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역을 대적하는 바리새인들과 유대의 관원들과 변론이 생기거나, 유대인의 전통과 교리에 배치되는 일이 생길 때는 그에 대한 바른 해석을 풀어 주기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 곁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어떤 때 주님께서는 식사할 겨를조차 없을 때도 다반사이셨던 것 같습니다(막6:31). 그러나 복음서 기자들은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시는 주님께서 이상하리만치 집착하신 태도 한 가지가 있음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 한 영혼을 만나 그들과 대화할 때의 주님의 모습을 매우 상세하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가성 우물가에서 다섯 명의 남자를 바꿔가면서도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했던 한 여인을 만나셨을 때, 한 밤중 집으로 찾아온 니고데모를 대하실 때, 성전 앞뜰에서 돌에 맞아 죽을 뻔 한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려 온 한 여인을 만나시는 모습에서... 등등. 주님께서 한 사람을 대하시는 태도는 마치 온 인류를 대하시는 것이나 다름없이 진지하게, 그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목회를 하면서 그렇게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기보다는 늘 대중과 큰 집단을 더 중요하게 여겨왔음을 고백합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고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대답해 주신 말씀은 99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밤새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목자 이야기였습니다. 지금이라도 나의 목양 태도를 대중이나 일에 집중하면서 허둥대다가는 내 인생에 남는 게 없을 것을 깨닫습니다. 그보다는, 지금 내 앞에 나타나 목자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한 영혼을 소중한 여기는 목양을 할 참입니다. 성녀 마더 테레사가 남긴 말에 더 마음을 기울여 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사랑 할 순 있습니다. 지금 당신 앞에 있는 그 사람을 사랑하세요.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의 마음을 이미 깨달았던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므로 내 인생의 나이테를 의미 있게 채워가려 합니다. 진작 이런 삶을 살았어야 했습니다.
장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