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의 가치를 바로 안다면
언젠가 TV에서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수술 팀의 모습을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긴 시간을 좁은 공간에 서서 손끝만 움직이고 있는데도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손끝에서 좌우될 수 있기에, 조그만 실수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집도하는 의사의 눈빛과 섬세한 손놀림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TV를 끄고 난 뒤 잠시 묵상에 잠겼드랬는데, 왠지 허전하고 서글픈 마음이 몰려왔습니다. 우리 자신의 영혼을 다루는 우리의 태도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자신의 영혼을 지지하게 다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치킨 가공공장의 일꾼처럼 자신의 영혼을 너무나 부주의하게 다루고 있음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에 심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을 치르셔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은 그 선물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유심히 보고 계십니다.
요즘은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입니다.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해 땀을 흘리거나 돈을 투자하는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심지어는 위험한 성형수술조차 마다하지 않습니다.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려면 그 정도 위험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외모에 많은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정작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영혼은 돌보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폐허가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영혼을 방치합니다. 방치된 곳은 반드시 폐허로 변하기 마련입니다. 뒤뜰도 한 달만 관리하지 않고 방치해 두면, 볼상 사나운 모습으로 변합니다. 집이 아무리 번듯해도 정원이 망가져 있으면, 그 집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이 방치되면 피폐화 현상이 찾아옵니다. 영혼이 피폐해지면 인생의 가치는 하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우리의 영혼입니다. 가치체계는 존재의 시간성에 비례합니다. 즉, 존재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의 존재 기간은 어느 정도일까요? 성경은 영혼의 한계를 ‘영원’ 이라 정의합니다. 영혼은 불멸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영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작 가치 있는 것을 돌보지 않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영혼을 진지하게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배를 통해, 교우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또한 기도를 통하여 한 영혼을 제대로 보살피고 돌아보는 귀한 시간을 가져 보십시다. 그리고 한 영혼을 위하여 시간과 물질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한 주간이 되십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요한삼서 2절)” 라는 사도 요한의 축복처럼, 여러분의 영적인 삶을 이끄는 저에게도 동일한 소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기를 원합니다. 영혼이 아름답게 세워짐으로 얻는 모든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 넘쳐나기를 진심으로 간구합니다.
장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