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울렁이게 만드는 성탄절의 추억2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은 기독교인들만이 아니었습니다.‘땡그랑’거리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소리와 함께 성탄절의 축제는 기독교인들의 의식을 넘어, 시내의 거리뿐만 아니라, 동네 가게들에서도 징글벨 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그 당시 유행하던 팻 분의‘화이트 크리스마스’캐럴이 흘러 나왔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성탄절은 서로서로 선물과 카드를 주고받는 즐거운 날이었지요.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들에게 주기 위해 밤 새워 크리스마스카드를 직접 손으로 그렸습니다. 초록빛 혹은 눈 덮인 소나무, 시골 마을과 뾰족탑이 있는 예배당과 같은 것들이나, 동방박사와 목자들의 모습,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구간 같은 내용을 정성을 다해 그려 넣었습니다. 한국의 60년대, 70년대는 통금이 있던 시절이었지요. 그런데 1월 1일 제야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이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날이 바로 성탄절 전야였습니다. 사람들은 모처럼 통금에서 벗어난 자유로 움에 밤새워 거리를 쏘다니며 억눌렸던 시대의 억압을 풀던 밤이 바로 그날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성탄절에 대한 아련한 흥겨움과 기억들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과거에는 성탄절에만 볼 수 있었던 일들이 이제는 일상화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수시로 선물과 카드를 주고받습니다. 지금은 성탄절 전야의 통행금지 해제도 의미가 없어진 것이, 우리가 사는 미국은 통금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새벽송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복잡한 도시 공간속에서 새벽의 합창은 소음으로 취급되어 주민들의 시빗거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성탄절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도 이제는 신이 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색종이, 금종이, 은종이를 사다가 직접 가위로 오리고 붙이고 매달고 했는데, 이제는 가짜 나무에 걸 장식들이 정교하고 화려하고 다양하게 제품화되어 있어서 마켓에 가든지 온라인으로 주문하여 걸기만 하면 됩니다. 편리해지기는 했지만 정성이 없는 성탄 장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대가 변했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날, 온 인류의 구원과 해방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날, 이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널리 퍼질 수 있는, 그리고 이 소식에 감격하는 사람들에 의해 한바탕 잔치가 열릴 수 있는 그런 성탄절이 다시 한 번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상업화되고 세속화된 마음도 걷어내고, 너무 이기적인 삶의 겉옷도 벗어버리고, 나에게서 너에게로, 그리고 이웃에게로 성탄의 기쁨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그 옛날 성탄절의 추억들을 떠 올리며, 차가워진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먼 훗날 또 다시 오늘의 성탄절을 추억하며 가슴 따뜻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장목사
‘모든 장애우들이 복음을 듣고 행복하게 사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