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깨달아지는 것들
예전에 어르신들은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이들 크는 건 알겠는데 내가 나이 드는 건 모르겠다.”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습니다. 젊은 나에게 나이는 그저 뛰어넘어야할 장애물이고, 비행기의 공기저항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극복까지는 아닐지라도 무시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서른이 되었을 때 묘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이제 어린아이나 풋내기 청년은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이제 나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묘한 흥분이 더해지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다 마흔이 되자 이상하게 ‘의기소침’이란 단어가 적절할 만큼 마음이 웅크려졌습니다.
아내가 둘째를 낳았을 때 아직 삼십대 중반이었습니다.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는데 무릎이 좀 부담이 되었습니다만, 일시적 현상이라 여기며 무시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무릎이 아파왔습니다. 몇 년 뒤 눈이 침침해지는 것 같아 안과를 찾았습니다. 안경을 써야할 것 같다고 하여, 그때부터 안경을 끼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좀 무서웠습니다. 아직 삼십대인데 벌써 몸이 가는가... 해서지요.
마흔이 되었습니다. 공자는‘불혹(不惑)’이라 하여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러나 40대에 가장 많은 부부들이 이혼하고 소위 바람을 피웁니다. 그동안 다녔던 직장에서도 자리 지키기가 위태로와 명퇴나 조퇴를 선택하고 무직자 신세가 되는 시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마흔이 무서운 겁니다. 나는 37세에 교회를 개척하여 마흔으로 넘어가면서도 여전히 개척교회를 섬기듯 했습니다.
60대 중반이 넘어간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하면‘그러니까... 이십년 전’‘삼십 년 전에는’이란 말을 자주 쓰는 걸 보며 깜짝 깜짝 놀랍니다. 내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된 것일까? 예전엔 어른들이‘내가 니 나이 땐 돌도 씹어 먹었어.’한다든가,‘난 너 같을 때 날아 다녔다’는 말을 할 때면 귀담아 듣지 않았었습니다. 속으로‘나는 나이 들면 절대 그런 말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드랬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는 말을 들어보면 내 입에서도 종종 그런 말이 나오는 걸 속일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나도 어린 학생이나 청년들이 볼 대 케케묵은 말만 늘어놓는 그런 꼰대일까? 갑자기 그들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이제야 이런 것들이 깨달아지는 걸 보면, 이것 또한 나이 듦의 표시인 게지요...
장목사
‘모든 장애우들이 복음을 듣고 행복하게 사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