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아름다운 이유
지난 금요일 저녁, 한 선교사님의 장례식에 참석하고는 I-20 웨스트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내 시야 멀리로 들어오는 서쪽 하늘이 얼마나 붉게 타오르며 아름다움을 자아내는지, 시각적으로만 아름다움이 전해 온 것이 아니라, 운전대를 잡은 제 가슴까지 황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막 얼굴을 지평선 아래로 떨어뜨리고는 있지만, 아니 지평선 아래로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춘 뒤에도, 아직 한 동안은 석양(夕陽)의 아름다움을 오히려 더 아름답게 유지한 채, 온통 하늘을 붉은 빛으로 단장하고 있는 모습... 저는 그 석양의 모습에서 저물어가는 인생이지만, 정말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노인들의 삶을 잠깐 묵상했습니다.
방금 참석했던 장례식은 평범한 장례식이 아니었습니다. Don C. Jones 선교사님은 18세의 나이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우연히 한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전쟁이 끝나 고국인 미국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었을 때, 그 목사님으로부터 ‘Don은 꼭 선교사로 한국에 다시 와 주기를 기도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는 미국에 돌아온 후로, 그 험한 상황의 한국을 생각만 해도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문득 문득 그 한국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맴돌아, 결국 종전이 된지 5년 후인 1958년, 이번에는 선교사의 신분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게 됩니다. 선교사님은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첫째 딸이 태어난 지 불과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어린 것을 데리고 한국으로 나가서 36년 동안, 한국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인 ‘복음’을 전하다가, 60대가 훨씬 넘어서야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와 여생을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살다가 지난 주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녁 무렵, 찾아간 장례소에는 40-50명 정도의 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화기애애하게 담소하고 있었습니다. 벽에 걸려 있는 TV에는 존스 선교사님의 사진들이 슬라이드 쇼로 비쳐지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대부분의 사진들은 그분이 한국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찍었던 사진들로, 그것들 가운데는 면식이 있는 분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선교사님의 아들이 내게 들려주는 아버지의 삶 또한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돌아온 후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한국 성경을 펴서 읽고 경건의 시간을 가질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셨고, 그래서 더더욱 한국어를 잊지 않으려 무척 노력하셨다”고 들여 주었습니다. 최희준이라는 한국명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던 선교사님은 한국어를 한국인처럼 유창하게 구사하시는 몇 안 되는 선교사님이십니다.
그날 저녁, 뜻밖에도 오래 전의 기억 속에 계셨던 분들을 만났습니다. 지애숙 사모님, 그녀는 대전침례신학교 초대 학장을 지내신 Dr. Gammage의 부인이시고, 교회사를 강의하셨던 Dr. Peterson(배태선)의 사모님도 만났습니다. 그들 모두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비쳐지는 모습은 아름다운 석양(夕陽)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행복과 평안, 그리고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황홀한 노년... 그분들을 보며 인생의 석양이 더 아름다운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