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의 의미 회복
해마다 맞이하는 성탄절이지만, 그 가운데 몇 번은 정말 의미 있는 행사들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학생부 때 일 입니다. 우리 학생부가 준비한 성극 ‘크리스마스 캐럴’ 을 가지고 부산 외곽에 위치한 군부대를 방문하여 많은 장병들이 운집한 강당에서 준비한 성극 공연과 중창 및 바이올린 연주를 가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축하 순서를 마치고 밤늦게 군인들이 끓여주신 떡국을 먹으며 즐겁게 교제의 시간을 보냈었는데, 그렇게 보내는 성탄절이 '마구간에 태어나신 예수님'과 매우 가까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떠올리는 구세군 냄비와 종소리는 성탄절의 명물입니다. 겨울에 들어서면서 그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그 의미도 아름답습니다. 기쁨과 축제의 틈바구니에서 어정쩡하기 보다는,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향해 구제의 손을 내미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세상에 보일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소식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아기 예수님이 성육신하셨다는 성탄절의 의미를 전하지는 못해도“성탄절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돕는 때”라는 이미지를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꽤 성공적인 성탄절 맞이가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가난한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셨지만, 그분은 가장 기쁜 소식을 안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어주셨습니다. 성탄절이라는 축제의 의미보다 먼저 생각할 것은 바로 이점입니다. 교회의 축제이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성탄절의 의미를 잊지 않는 것, 성경에 등장하는 축제들은 모두 주변의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축제였습니다.
성탄절을 의미 있게 보내 보자고 말하기에는 지금의 교회가 이미 너무 많은 부분에서 세속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밖을 향해 교회만의 목소리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과 다름없는 지금에라도, 교회가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일생을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넘쳐나는 선물과 잘 차려진 식탁을 앞에 두고 성탄을 기린다는 것이 좀 어색하고 원래의 의미에서 많이 동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 계절에는 개인적으로나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성탄이 오기 전에, 예수님과의 만남을 깊이 묵상하고 나누는 시간을 보낸다면... 그런 시간을 보낸 후에 가지는 축제의 파티라면, 그 속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참 평화와 화목도 함께 묻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장목사
‘모든 장애우들이 복음을 듣고 행복하게 사는 그 날까지...’